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여행의 역사 / 이병률

폴래폴래 2013. 10. 30. 06:30

 

 

 

 

 

 

 

    여행의 역사

 

 

                                          - 이병률

 

 

 햇살은 얼마나 누구의 편인가

 

 무사했구나 싶었는데

 떠나는 거였다

 

 계절이 오나 보다 하는데

 시절이 끝나는 거였다

 

 아버지, 오셨어요?

 하는데

 아니다, 나가는 길이다

 하신다

 

 마음먹은 게 아니라

 모두가 마음을 놓고 가는 길이다

 

 시계가 빨리 간다고 했더니

 며칠 전부터 가지 않는 중이라 한다

 

 꺾어져 비겁한 꽃대들만 밟히는데

 우주의 물고기는 여전히 도착하는 중인가

 

 어디를 묻는다

 이 방향이 맞나요?

 아니, 지나쳤습니다

 

 쓸개의 고장이 아니다

 지하에 머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치고 빠지는 바람처럼

 

 뒤에서 자꾸 부르는데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시집『눈사람 여관』문지 2013

 

 

 시인의 말

 

 삶과 죄를 비벼 먹을 것이다.

 세월이 나의 뺨을 후려치더라도

 나는 건달이며 전속 시인으로 있을 것이다.

 

                       2013년 초가을

                                 이병률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바람의 사생활>

   <찬란>, 산문집<끌림><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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