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역사
- 이병률
햇살은 얼마나 누구의 편인가
무사했구나 싶었는데
떠나는 거였다
계절이 오나 보다 하는데
시절이 끝나는 거였다
아버지, 오셨어요?
하는데
아니다, 나가는 길이다
하신다
마음먹은 게 아니라
모두가 마음을 놓고 가는 길이다
시계가 빨리 간다고 했더니
며칠 전부터 가지 않는 중이라 한다
꺾어져 비겁한 꽃대들만 밟히는데
우주의 물고기는 여전히 도착하는 중인가
어디를 묻는다
이 방향이 맞나요?
아니, 지나쳤습니다
쓸개의 고장이 아니다
지하에 머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치고 빠지는 바람처럼
뒤에서 자꾸 부르는데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시집『눈사람 여관』문지 2013
시인의 말
삶과 죄를 비벼 먹을 것이다.
세월이 나의 뺨을 후려치더라도
나는 건달이며 전속 시인으로 있을 것이다.
2013년 초가을
이병률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바람의 사생활>
<찬란>, 산문집<끌림><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젖지 않는 사람 / 이현승 (0) | 2013.11.04 |
---|---|
봄, 봄 / 박형권 (0) | 2013.11.01 |
낮술 / 권현형 (0) | 2013.10.29 |
침대 / 박연준 (0) | 2013.10.24 |
고요의 음계 / 김추인 (0) | 2013.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