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몸
- 황형철
대대로 몸 안에 바람이 응축된 마방馬幇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야 할 길을 떠난다는 것은 짧은 수명을 담보로 바람을 풀어내는 일이다
새만이 다다를 수 있는 차마고도茶馬古道에 오직 바람이 성한 것도, 지층의 칠팔 할이 바람으로 이뤄진 것도 그 때문이다
미처 다음 생을 받지 못한 이름들과 말들의 비명이 떠내려가는 대협곡에 흰 뼈들이 소용돌이 치고
바람에게 길을 내주느라 길은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든다
이제 내가 가진 몇 마리의 새를 놓아주기로 한다
새는 제 힘을 다해 격렬한 바람의 눈물을 날개에 새길 것이다
그리고 먹먹한 암벽의 혈을 짚으며 걸어야지
아무 곳에도 귀속하지 않는 바람의 시제가 궁금한 때가 있다
이 세상 가장 은밀한 내륙에 묻혀 있을 화석이 된 바람의 연대기를 찾아
긴긴 세로世路의 파문에 대해 들을 테다
바람의 몸을 빌려 살아야겠다
몇 세기를 거슬러 바람은 심장에 전이되고 우기를 지나 나는 또 어딘가로 돌아갈 것이다
나와 바람은 근친이다
시집『바람의 겨를』고요아침2013
- 1975년 전북 진안 출생. 광주대 문창과 졸업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시평>으로 등단
시와사람 편집장, 광주문화방송 재직.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작나무 / 신용목 (0) | 2013.03.11 |
---|---|
낮잠 / 황인숙 (0) | 2013.03.07 |
그 말(馬)을 생각하는 밤 / 이영옥 (0) | 2013.03.04 |
붕어빵 / 김명원 (0) | 2013.03.03 |
가출 / 김준현 (0) | 2013.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