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내밀다
- 맹문재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3
감았던 눈을 떳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시집『사과를 내밀다』실천문학 2012
-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고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1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수상. 안양대 국문과 교수.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은 입술들 / 김유자 (0) | 2012.12.16 |
---|---|
수선집 근처 / 전다형 (0) | 2012.12.16 |
지나가버리는 것에 대한 메모 / 박형준 (0) | 2012.12.15 |
극치 / 고영민 (0) | 2012.12.14 |
한낮의 체위 / 정운희 (0) | 2012.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