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만 네가라*
- 김소연
지느러미 달고
바다 속을 떠돌아다니며
물고기들 손끝으로 만지다 놓아주던
여름이 있었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떠올리지 않은 채
한쪽 끝과 한쪽 끝에
가난한 집 한 채가 놓인 길 위를
맨발로 걷기만 하던
여름이 있었고
소낙비를 맞아
뚝뚝 물이 떨어지는 옷을 입고
맑은 하늘이 다 말려줄 때까지
강 건너는 물소를 쳐다보며 앉아 있던
여름이 있었고
젖은 나뭇잎들 끌어 모아
한 잔 찻물을 끓이기 위해
한나절을 불 지피던
여름이 있었다
10월도 여름이었고
11월도 여름이었고
12월도 여름이었으나
눈 뜨면 봄이었고
그늘 아래 가을이었고
꿈속은 겨울이었던
여름이었다
* 타만 네가라Taman Negara : 말레이시아 중부 지방 밀림 지대.
시집『눈물이라는 뼈』문지 2009년
-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가톨릭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3년<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극에 달하다><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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