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여름 장마 / 이병률

폴래폴래 2012. 9. 2. 15:20

 

 

 

 

 

 

 

여름 장마

 

                                          - 이병률

 

 

 

 미안하다고 구름을 올려다보지 않으리라

 좋아, 라고 말하지 않으리라

 

 그대를 데려다주는 일

 그대의 미래를 나누는 일

 그 일에만 나를 사용하리라

 

 한 사람이 와서 나는 어렵지만

 두 평이라도 어디 땅을 사서

 당신의 뿌리를 담아야겠지만

 그것으로도 어려우리라

 

 꽃집을 지나면서도 어떻게 살지?

 좁은 골목에 앉아서도 어떻게 살지?

 요 며칠 혼자 하는 말은 이 말 뿐이지만

 당신으로 살아가리라

 

 힘주지 않으리라

 무엇이 비 되어 내리는지도

 무엇으로 저 햇빛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세상에는

 공기만으로도 살아가는

 공기란空氣蘭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알았으니

 당신으로 살지는 않으리라

 

 물 없이

 흙도

 햇빛도 없이

 사람 없이

 나는 참 공기만으로 살아가리라

 

 

 

 『시와 표현』2012년 가을호

 

 

 

 -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바람의 사생활><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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