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
- 이병률
미안하다고 구름을 올려다보지 않으리라
좋아, 라고 말하지 않으리라
그대를 데려다주는 일
그대의 미래를 나누는 일
그 일에만 나를 사용하리라
한 사람이 와서 나는 어렵지만
두 평이라도 어디 땅을 사서
당신의 뿌리를 담아야겠지만
그것으로도 어려우리라
꽃집을 지나면서도 어떻게 살지?
좁은 골목에 앉아서도 어떻게 살지?
요 며칠 혼자 하는 말은 이 말 뿐이지만
당신으로 살아가리라
힘주지 않으리라
무엇이 비 되어 내리는지도
무엇으로 저 햇빛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세상에는
공기만으로도 살아가는
공기란空氣蘭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알았으니
당신으로 살지는 않으리라
물 없이
흙도
햇빛도 없이
사람 없이
나는 참 공기만으로 살아가리라
『시와 표현』2012년 가을호
-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바람의 사생활><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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