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발끝의 노래 / 신영배

폴래폴래 2012. 8. 27. 09:39

 

 

 

 

 

 

 

 발끝의 노래

 

                                     - 신영배

 

 

 

 바람이 문자를 가져간다

 이것은 창가에 매달아놓은 육체 이야기

 

 창문을 열면

 귀에서 귀로 냄새가 퍼졌다

 

 그 발바닥을 보려면

 얼굴을 바닥에 붙여야 하지

 아무도 공중에 뜬 자국을 보지 못한 때

 문자가 내려와 땅을 디디려는데

 바람이 그것을 가져갔단 말이지

 

 구더기처럼 그림자가 떨어졌다

 

 한 줄 남기고 다 버려 우리들의 문학수업

 

 시외로 가는 차량 근처에 너를 떼어버리고 오다

 멀리멀리 가주렴 문장아, 내가 사랑했던 남자야

 

 살갗 같았던 문장과 이별하고도

 아름다운 시 한 편 쓰지 못하는 나는

 목만 끊었다 붙였다

 

 태양 아래 서서 혼자 부르는 노래

 내 그림자 길이만큼 땅을 판다

 내 그림자를 종이에 싼다

 내 그림자를 땅에 묻는다

 내 그림자 무덤에 두 번의 절

 그리고 축문

 

 오늘 나는 그림자 없이 일어선다

 흰 눈동자의 날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을 완성할 즈음

 내 발목을 잡는 검은 손

 어제 장례를 치른 그림자가 덜컥 붙는다

 발끝을 내려다봐

 끊은 목 아래

 꿈틀거리는 애벌레들

 

 이별은 계속된다

 

 바람이 문자를 가져간다

 이것은 창가에 매달아놓은 육체 이야기

 

 붙이고 붙인 살덩이를 끊고 끊어

 차분히 내려놓을게

 공중에 뜬 발바닥 아래로

 

 다 내려놓을 테니 다 가져가란 말이지

 

 

 

 시집『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문지 2009

 

 

 

 

  - 1972년 충남 태안 출생. 2001년<포에지>로 등단.

   시집< 기억이동장치>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속의 빛 / 조용미  (0) 2012.08.28
바다풀 시집 / 김선우  (0) 2012.08.27
나뭇잎의 맛 / 조용미  (0) 2012.08.25
꽃무릇 / 김은령  (0) 2012.08.24
친애하는 사물들 / 이현승  (0) 201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