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의 노래
- 신영배
바람이 문자를 가져간다
이것은 창가에 매달아놓은 육체 이야기
창문을 열면
귀에서 귀로 냄새가 퍼졌다
그 발바닥을 보려면
얼굴을 바닥에 붙여야 하지
아무도 공중에 뜬 자국을 보지 못한 때
문자가 내려와 땅을 디디려는데
바람이 그것을 가져갔단 말이지
구더기처럼 그림자가 떨어졌다
한 줄 남기고 다 버려 우리들의 문학수업
시외로 가는 차량 근처에 너를 떼어버리고 오다
멀리멀리 가주렴 문장아, 내가 사랑했던 남자야
살갗 같았던 문장과 이별하고도
아름다운 시 한 편 쓰지 못하는 나는
목만 끊었다 붙였다
태양 아래 서서 혼자 부르는 노래
내 그림자 길이만큼 땅을 판다
내 그림자를 종이에 싼다
내 그림자를 땅에 묻는다
내 그림자 무덤에 두 번의 절
그리고 축문
오늘 나는 그림자 없이 일어선다
흰 눈동자의 날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을 완성할 즈음
내 발목을 잡는 검은 손
어제 장례를 치른 그림자가 덜컥 붙는다
발끝을 내려다봐
끊은 목 아래
꿈틀거리는 애벌레들
이별은 계속된다
바람이 문자를 가져간다
이것은 창가에 매달아놓은 육체 이야기
붙이고 붙인 살덩이를 끊고 끊어
차분히 내려놓을게
공중에 뜬 발바닥 아래로
다 내려놓을 테니 다 가져가란 말이지
시집『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문지 2009
- 1972년 충남 태안 출생. 2001년<포에지>로 등단.
시집< 기억이동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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