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자미원역 / 조정

폴래폴래 2012. 5. 21. 13:56

 

 

 

 

 

 

 

 

   자미원역

 

                          - 조정

 

 

 

 태백선 철도는 티베트선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기차가 서지 않는 플랫폼이 오백 년 된 양은냄비처럼

 빛나는 소맷부리를 햇빛에 고스란히 내놓은 길목이 있습니다

 

 좁고 긴 의자는 드문드문 어깨가 벗겨져

 빗소리에 쉬 젖거나

 몸 무거운 새를 붙들고 안 놓아 주기도 합니다

 심심한 철로를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어서 놓친 버스가

 가을 쪽으로 흘러가는 뒷모습을 따라

 터널터널 터널 몇 개 여닫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이 길을 밟고 가면

 비폭력 무저항으로 하늘을 사열 중인 포탈라 궁이 보입니다

 

 고랭지 배추밭 비탈에는 울음 울 자리가 많습니다

 증산역에서 하차하여 자미원역으로 돌아가

 버스를 놓쳐야 합니다

 사람이 내놓은 길에서 절 대신 눈물을 쏟아주고

 마른 울음을 소리칠 자리만 많습니다

 

 

 

 

 

 『시가 있는 간이역』최학 지음. 2012년 서정시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