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원역
- 조정
태백선 철도는 티베트선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기차가 서지 않는 플랫폼이 오백 년 된 양은냄비처럼
빛나는 소맷부리를 햇빛에 고스란히 내놓은 길목이 있습니다
좁고 긴 의자는 드문드문 어깨가 벗겨져
빗소리에 쉬 젖거나
몸 무거운 새를 붙들고 안 놓아 주기도 합니다
심심한 철로를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어서 놓친 버스가
가을 쪽으로 흘러가는 뒷모습을 따라
터널터널 터널 몇 개 여닫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이 길을 밟고 가면
비폭력 무저항으로 하늘을 사열 중인 포탈라 궁이 보입니다
고랭지 배추밭 비탈에는 울음 울 자리가 많습니다
증산역에서 하차하여 자미원역으로 돌아가
버스를 놓쳐야 합니다
사람이 내놓은 길에서 절 대신 눈물을 쏟아주고
마른 울음을 소리칠 자리만 많습니다
『시가 있는 간이역』최학 지음. 2012년 서정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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