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술 / 유영금

폴래폴래 2012. 5. 2. 10:07

 

 

 

 

 

 

 

 

                           - 유영금

 

 

 도발적인 년,

 사내들이 꼼짝없이 감전되고 말아

 목젖을 애무할 때

 아찔한 쾌감 짜릿짜릿 고조되거든

 그 맛에 흐믈흐믈 녹아

 낙주가는 쓸개를, 관주가는 췌장을,

 폐주가는 간을 바쳐 사랑하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애첩인 거야

 

 발칙한 년,

 이름도 향기도 수만 가지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지

 사내들의 간을 다 빼먹지

 간만 빼먹나

 수틀리면 쓸개도 구멍내고

 췌장까지 서슴없이 파먹으며 좋아하지

 

 고얀 년,

 제멋대로라니까

 고약한 비법에 걸려든 사내들

 도대체 물릴 줄 몰라

 땅거미 울면 진저리나게 그리워

 쓸개와 췌장과 간을 싸들고 맨발로 달려가지

 

 그런데 문제는 글쎄

 사내들만 사로잡는 게 아니야

 십 수 년 전

 벼랑길에서 나도 말려들어

 레즈비언 사이가 되었지 뭐야

 췌장을 맛있게 갉아먹는

 눈물을 아는 년, 얼마나 인간적인지 몰라

 가면을 벗지 않는 오물통 세상엔

 그 년보다 솔직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거든

 췌장을 다 먹어치운 뒤 날 내동댕이치면

 끊어진 다리 누구와 건너지?

 

 

 

 시집『봄날 불지르다』문학세계사 2007년

 

 

 

 

 - 1957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94년 청구문학 시 대상.

   1997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 당선.

   2003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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