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목련꽃이 지는 까닭
- 이선영
목련은 꽃샘바람 견뎌가며 저 뿌리 끝에서부터 아름다운 노래를 피워올렸다
꽃봉오리가 한껏 벌어지던 어느날 그 아래를 지나던 인간의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한떨기 노래를 피우는 악기였을 때 목련은 자신에게 두 다리가 없음을 불행해하지 않았었다
느닷없는 사랑은 기어이 그녀의 몸에서 흡반 같은 두 다리를 돋아나게 했고
인간의 남자를 닮은 두 다리는 목련에게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걸을 때마다 애써 감춰야 하는 고통은 왜인가
두 다리를 얻는 대신 목련은 그의 노래를 잃었다
두 다리만 덩그마니 매달린 벙어리 목련은 더이상 목련이 아니었다
그 손에 꽃잎이 낱낱이 찢겨나가는, 사랑
세상 모든 암꽃들이 그들의 수꽃과 함께 잠든 새벽
자신의 사랑을 찌르지 못한
목련은 거추장스러운 두 다리를 벗어던지고
수만 개 공기방울이 되어 대기중으로 흩으져갔다
꽃샘바람 채 가시기도 전인 4월의 하룻밤 새 자고 일어나 거리에 나서보니
목련꽃잎이 세상을 온통 무너뜨렸다
커다랗고 흰 눈물방울들이 공중에서 흘러내렸다
시집『포도알이 남기는 미래』창비 2009년
- 196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동대학원 박사.
1990년『현대시학』등단
시집<오, 가엾은 비눗갑들><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평범에 바치다><일찍 늙으매 꽃꿈>
이화여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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