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의 書
- 유병록
거기서는
죽은 자의 피부를 벗겨 생전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나눠 가진다더군
아끼는 책을 장정하고 이름을 새긴다더군
죽은 자는 책이 된다더군
아기가 태어나 글을 익히면
가장 최근에 죽은 자의 피부로 감싼 책을 선물한다더군
그를 대부로 삼는다더군
거기서는
몇 권의 책을 장정하며 성인이 된다더군
결혼을 서약할 때는 책에 손을 얹고
여기 장엄한 생을 두고 맹세합니다, 말한다더군
때가 되면
책을 꽂아놓은 책장에서 죽은 자들의 음성이 들린다더군
가까운 사람의 명단을 유언으로 남겨야 한다더군
거기서
죽은 자는 몇 권의 책이, 문자의 외투가 된다더군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젊어서 죽은 자는
혁명의 책이 된다더군
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다더군
살아남은 자들이 삶에 관한 의문이 드는 저녁에 쓰다듬는
한 권의 생이 된다더군
『현대문학』2011년 11월호
- 1982년 충북 옥천 출생. 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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