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의 소나기
- 전형철
이 비가 계속되는 동안 세상은 조금 평등해진다
기억의 나무들이 단단해지고
웅덩이는 하늘을 닮고
패이거나 긁힌 흔적이 메워진다
12시 정각을 넘기고도 12시를 알리는 종이 끝나지 않을 때
이 별의 기울어진 축
보이지 않은 길 위에 마음은
왼쪽 뒷굽만 닳아간다
땅보다 물 위에 많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생각하다
도린곁을 지키던 쥐똥나무처럼 웅크린
혈맥을 짚는다
비를 피한 먼지들이 놓여나듯
시간의 페이지 듬성해지고
잘못 배달된 엽서로 삭아간 모든 당신들을 떠올릴 당신들이
소나기와 소나기의 사이에서
물 한 잔을 마신다
식도를 따라 빈속으로 소나기가 한바탕
아침 산과 저녁 산의 높이가
바다와 더 가까워진다
『시와문화』2011년 가을호
- 충북 옥천 출생. 고대 국문과,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7년<현대시학> 신인상 등단.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계간<다층>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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