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12시의 소나기 / 전형철

폴래폴래 2011. 9. 15. 16:57

 

 

 

 

 

 

 12시의 소나기

 

                                      - 전형철

 

 

 

 이 비가 계속되는 동안 세상은 조금 평등해진다

 기억의 나무들이 단단해지고

 웅덩이는 하늘을 닮고

 패이거나 긁힌 흔적이 메워진다

 12시 정각을 넘기고도 12시를 알리는 종이 끝나지 않을 때

 이 별의 기울어진 축

 보이지 않은 길 위에 마음은

 왼쪽 뒷굽만 닳아간다

 땅보다 물 위에 많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생각하다

 도린곁을 지키던 쥐똥나무처럼 웅크린

 혈맥을 짚는다

 비를 피한 먼지들이 놓여나듯

 시간의 페이지 듬성해지고

 잘못 배달된 엽서로 삭아간 모든 당신들을 떠올릴 당신들이

 소나기와 소나기의 사이에서

 물 한 잔을 마신다

 식도를 따라 빈속으로 소나기가 한바탕

 아침 산과 저녁 산의 높이가

 바다와 더 가까워진다

 

 

 

 『시와문화』2011년 가을호

 

 

 

 

 - 충북 옥천 출생. 고대 국문과,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7년<현대시학> 신인상 등단.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계간<다층>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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