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무공
류혜란
1.
후두가 막힌 듯 따끔따끔한
늦봄, 그릉 그릉 골목길로 빠져나온 집고양이
비스듬히 돌출된, 마치 액자처럼
정해진 시야 바깥에서
제 스스로 무심히 자라난 것 같은
뿌연 야생의 나뭇가지를 만났다
고양이 얼굴이 가지의 포즈를 따라
비스듬해졌다, 흐물흐물 결국
무슨 최면에 빠진 듯 점점 비스듬히,
비스듬히, 내면의 경사를 따라
빨려 올라가는 것 같은 고양이
다시금 앞발을 툭 디뎠다
2.
실전의 상대로 풀쩍 찾아간 곳은
재건축한 도시 교회의
매끈하기만 한 쇠 더하기 십자가
밤 옥상에 올라간 고양이는 갸우뚱,
홀로 이상한 곱하기를 하고 내려온다
온통 이상한 곱하기를 하고 내려온다
온통 더하기 무늬 강박증에 걸린 시민들은
버럭버럭 뒤뚱뒤뚱 아수라장, 허나
사방팔방 돌리고 비트는 고양이에겐 천하무적
그 봄날 몰랐던 거울 속 내밀한 소원 같은 풍경,
야생의 가지 비스듬한 시선 속에서
무슨 무공을 배웠나
오로지 살짝 고개만 꺾을 뿐, 발차기 하나 없이
조금 의문스럽게만 딱 고만큼만 돌려놓고 떠나는
의뭉스런 고양이, 오늘 밤 안전한 꿈처럼
사정없이 비틀어지게 하는
시집『고양이 무공』발견 2011년
- 1980년 서울 출생. 서울여대 기독교학과 졸업.
2010년<문학청춘>으로 등단
「 발견」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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