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애인에게
- 김박은경
당신에게서 아직 한 발도 벗어나지 못했어요 당신 속에는 뜻밖만 기득해요 앞은 투시처럼 환한데 자꾸 당신 쪽만 향해요 계단은 그 속에 있어요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나머지가 사라져요 절대 돌아보지 않아요 그러면 돌이 될 걸요 앞이 보이질 않으니 멀어버린 눈동자를 삼켜요 걱정 말아요 언젠가 백 알이든 번들 제품을 살 거예요 당신을 봐도 눈멀 일 없는 초강력 울트라 UV코팅 같은 것, 당신은 자꾸 숨어요 아찔한 아래로 푸른색 에나멜 구두가 떨어져요 바닥에 닿는 소리가 없으니 얼마나 높고 멀게 온 걸까 남은 눈동자가 또 멀어요 그걸 삼키니 내겐 여전히 두 개의 눈동자가 있는 거예요 아니, 꼭 봐야 하는 건 아니죠 꼭 찾아내야 하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이 피는 흑장미빛 아직도 따뜻하니 어서 와서 그 이를 꽂아요 당신도 그 속의 내 마음도 다시는 허기질 일 없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 내 마음은 잘 갖고 있는 거죠?
시집『온통 빨강이라니』문학의전당 2009년
- 서울 출생. 숙명여대, 홍익대 산미대학원 졸업.
2002년『시와반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