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사람 있나요
- 권현형
남쪽 어느 화단에선가 짐승의 급소에선가 꽃냄새가
비린내가 독하게 풍겼다
늦가을은 말갛고 멍하고 맹한데
속도감도 광기도 난폭함도 없이
흰 종이의 구석에서 수도원처럼 적막한데
사라지지 않은 꽃이 붉은 수액으로 자가 수혈하며
호른을 불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었다
무진霧津 좋아하세요?
저는 거기에 아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난간에서 난간을 맨발로 걷다가 마음이 찢어져
낯선 해안의 약국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아끼는 사람이라는 말이 예감으로 다가왔다, 꼭 갖고 싶은
그것은 이미 꽃잎 한 절음과 함께 사라진 화석어化石語
안개와 고로쇠 수액이 쓰인 처방전을 받아들고 나오며
나를 붙잡고 가기로 했다
자가 수혈하기로 했다
아끼는 사람 하나쯤 사라진 지도 위
찾을 길 없는 좌표로 남겨 두기로 했다
『미네르바』2011년 여름호
- 1966년 강원 주문진 출생. 강릉대 영문과,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수료.
1995년『시와시학』등단
시집<중독성 슬픔><밥이나 먹자, 꽃아>
제2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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