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손
- 손현숙
사진 속 그 남자의 손은 예리하다
자코메티 조각처럼 그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다 검지와 중지 사이 담배는 아직도 우리의 들숨 날숨을 기억하는 듯 연기 사라지는 쪽으로 그의 눈길도 하염없다 칼금처럼 그어진 미간의 주름, 울음을 삼켜버린 사막 같은 저 눈빛, 막막한 표정과 소용없이 흘러가는 시선 그 끄트머리쯤에서 나 살면 안 될까
담배는 그의 또 다른 손가락 빨기, 배냇짓이다 자기가 자기를 감각하는 최초의 몸짓, 최후의 몸부림, 내 몸은 저 손을 기억한다 마음보다 먼저 도착해서 마음보다 먼저 나를 알아차린 저 길고 가느다란 비수, 스칠 때마다 나를 베고 다시 살려놓았다
그가 내 뱃속에서 몸을 한 바퀴 틀었다
내 사진에 담겨 침묵하는 동안에도 무럭무럭 자라 내 복부를 찢는다 나는 이제 그를 도로 낳아야 한다 내가 앞섶을 헤치고 젖을 물리기 전, 그의 촉수에 걸려 엄마가 되기 전, 태를 자르고 도망쳐야 한다
시집『손』문학세계사 2011년
- 서울 출생, 1999년『현대시학』등단.
2002년 평사리문학상 수상
시집<너를 훔친다> 사진산문집<시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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