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꽃은 언제나 진다 / 김종미

폴래폴래 2011. 2. 16. 16:00

 

 

 

 

 

 꽃은 언제나 진다

 

                              - 김종미

 

 

 

 나를 항복시키려고 꽃이 핀다

 어떠한 권력도

 어떠한 폭력도 이와 같은 얼굴을 가질 수 없어

 며느리밑씻개란 어처구니없는 이름의 꽃도

 내 앞에 권총을 빼들었다 총알을 장전한

 꽃 앞에 이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이중 삼중 문을 닫고 커튼까지 쳤으나

 몽유에 든 듯

 여기가 어딘가 깨어보면

 꽃에 코를 처박고 있거나

 눈동자에 그득 꽃잎을 쑤셔 박고 있다 나는

 이미 수형에 든 것이다

 내가 사람인 것이 죄인지

 쏟아진 물처럼 살아있는 것은 다 스며야한다

 이 지독한 음해의 향기에

 수갑 채여

 꽃비 촘촘한 창살 속

 애벌레처럼 둥글게 몸을 말아 바치며

 나는 너를 이길 수 없어 완전히

 내가 졌다고 생각할 때

 꽃이 졌다

 나를 항복시켰으면 너는 잘 나가야지

 꽃은 언제나 져서 나를 억울하게 한다

 

 

 

 

 『시산맥』2010년 겨울호

 

 

 * 제1회 시산맥 작품상 수상작

 

 

 

 - 1957년 부산 출생.

    1997년『현대시학』등단

    시와사상 편집장 역임.

    시집<새로운 취미>서정시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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