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 유형진

폴래폴래 2011. 1. 20. 12:59

 

 

 사진:박배덕 화백 작품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액자의 세계

 

                                               - 유형진

 

 

 

  이곳에선 모든 것들이 갇혀 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만, 이곳은 갇혀 있어야 풀려나는 곳입니다.

  시계 액자 안에 꽃병 액자가 있습니다. 꽃병 액자 안에 커피포트 액자가 있습니다. 커피포트 액자 안에 나침판 액자와 팽이 액자가 있습니다. 팽이 액자 안에 일곱 살과 아홉 살의 액자가 있습니다.

일곱 살의 액자는 자고 있었고(흑장미색의 벨벳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는 소리지요) 아홉 살의 액자 안에는 회색과 흰색을 섞은 뭉게 구름과 하늘색 하늘과 동전모양 해님과 동전을 넣는 뽑기 기계와 껌볼 같은 형형색색의 거짓말들이 있습니다.

  해님모양 동전을 뽑기 기계에 넣었더니 투명 반달을 붙여놓은 듯 한 볼이 한 개 튀어나옵니다. 볼을 열어보았더니 탱탱 튕기는 파란 고무공이 나옵니다. 파란 고무공은 포물선을 여섯 번 그리더니 다시 액자 속으로 퐁당 들어갑니다.

  파란 고무공이 튕겨 들어간 액자 속엔 하늘색 하늘이 있지만, 더 이상 뭉게구름도 해님도 없습니다.

다만 수염 없는 고양이가 있고, 눈썹 없는 부인이 있습니다. 액자 속 모든 사물들에 입이 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현대문학』2010년 5월호

 

 

 

 

 - 1974년 서울 출생. 서울산업대 문창과 졸업.

    2001년 현대문학 으로 등단

    시집<피터래빗 저격사건> 랜덤하우스중앙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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