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대교
만족한 얼굴로
- 김소연
자책을 사모하여 밤을 새웠죠 우린 눈동자를 버렸어요 밤의 심복이 되려고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흑마술이에요 사나운 눈썹을 퍼덕이며 칼을 내밀었어요
매번 찌르지는 않았죠
반포지구 고수부지에는 모기 떼가 운기 조식하고, 불빛들은 푸른 눈을 치켜떴어요 모
든 게 다행히도 찬연했어요 구하고자 하는 게 눈앞에 펼쳐졌어도, 자책을 사모하여 우리
는 강물만 바라보았어요 모기가 한철 양식을 다 모을 때까지
우리는 함께했고요 달빛은 등 뒤에서 빛났죠 소용 없었어요 우리 입김이 왼쪽에서 오
른쪽으로 잠시 향해 갔으나, 모든 것은 여름밤의 바람처럼 머릿칼을 살짝 흩뜨려놓고 지
나갈 뿐이었죠 주문처럼 들리던 우리 목소리는 있었지만은 자책을 사모하였기에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죠 퉁명한 서로의 입술만을 하염없이 바라봤어요
함께 앉은 벤치가 자책의 힘으로 길게 늘어난 건 그때였을 거예요 우린 아득히 멀어졌
구요 한 사람은 통일대교로 성큼성큼, 한 사람은 올림픽대교 쪽으로 휘청휘청, 마조 보며
까르르 웃었어요 워낙에 자책을 사모하므로, 이렇게 번번이 멀어져 언젠간 각자의 조국
으로 귀향하게 될 거야, 기다란 시소를 탄 아이들처럼 환희작약 놀았던 거예요
절망은 너무나 안전하므로 차마 디딜 수 없었구요 우린 다른 용기를 내야 했어요 자유로
에선 고함을 지르며 달렸어요 감시카메라가 환대하듯 플래시를 터뜨려줬어요 그 길에는
쉽게 갈 수 있는 끝장이 있었구요, 다 왔구나 초소 앞에서 유턴을 하고선 쉽게 돌아설 수
있었던 거예요 서로에게 혹은 허수아비에게 간청도 해보았어요 즐겨 내미시던 그 칼로, 한
번쯤 우리 심장을 깊이 관통해주십사 하고
자책을 사모하여 우린 금세 후회하고 말았지만요 후회를 자행하는 이 새벽의 만용을 우린
한 뼘 더 사모하므로, 이 무슨 개소리일까 하시겠지만요 새벽의 이 절실함을 우린 한 뼘 더
사모하므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는 우리만 아는 요새의 문을 열었던 거예요
만족한 얼굴로 우린 누워 있어요 엎드린 채 베개밑에 두 손을 넣어 두었죠 나란히 엎드려
이렇게 손을 가두는 것은요 부디 그 누구도 껴안지 말자는 우리만의 지령인 거예요
시집『눈물이라는 뼈』문지 2009
-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가톨릭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3년『현대시사상』등단
시집<극에 달하다><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산문집<마음사전> " 21세기 전망"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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