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깨끗한 거리 / 김행숙

폴래폴래 2010. 10. 26. 02:16

 

 

 사진:네이버포토

 

 

 

 

  깨끗한 거리

 

                             - 김행숙  

 

 

 

  택시는 동대문에서 종로로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세상에, 하나님 맙소사, 이

시간에 이렇게 빨리 달려보긴 처음이군.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야. 그런데 바

퀴 달린 것들은 모두 증발해버린 것 같지 않아요?” 기사는 어리둥절했다. 어, 어, 어,

 

  낙엽 몇 장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세상은 물리적으로 뒤집힌다. 서서

히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큰 혼란은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고기

를 잘라 먹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종종 빛보다 빨리 도

착 하기도 했다.

 

  나는 같은 남자와 두 번 연애에 빠졌고 두 번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택시는 종로1

가에서 종로2가로, 동대문으로 미끄러지듯 미끄러지고 있었다. 안녕. 낙엽 몇 장이 공

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경관 한 명이 갑자기 모자를 벗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몽둥이가 공기를 휘저어댔

다. 너무나 깨끗한 거리였고 어느 누구도 겁에 질리지 않았다. 달리는 사람은 헉, 헉, 헉,

입김을 내놓는다. 낙엽 몇 장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시집『이별의 능력』문지 2007

 

 

 

 

  - 1970년 서울 출생. 고대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현대문학』등단.

     시집<사춘기>

     현재 강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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