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깨끗한 거리
- 김행숙
택시는 동대문에서 종로로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세상에, 하나님 맙소사, 이
시간에 이렇게 빨리 달려보긴 처음이군.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야. 그런데 바
퀴 달린 것들은 모두 증발해버린 것 같지 않아요?” 기사는 어리둥절했다. 어, 어, 어,
낙엽 몇 장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세상은 물리적으로 뒤집힌다. 서서
히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큰 혼란은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고기
를 잘라 먹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종종 빛보다 빨리 도
착 하기도 했다.
나는 같은 남자와 두 번 연애에 빠졌고 두 번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택시는 종로1
가에서 종로2가로, 동대문으로 미끄러지듯 미끄러지고 있었다. 안녕. 낙엽 몇 장이 공
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경관 한 명이 갑자기 모자를 벗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몽둥이가 공기를 휘저어댔
다. 너무나 깨끗한 거리였고 어느 누구도 겁에 질리지 않았다. 달리는 사람은 헉, 헉, 헉,
입김을 내놓는다. 낙엽 몇 장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시집『이별의 능력』문지 2007
- 1970년 서울 출생. 고대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현대문학』등단.
시집<사춘기>
현재 강남대 강사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木백일홍 / 정채원 (0) | 2010.10.28 |
---|---|
만족한 얼굴로 / 김소연 (0) | 2010.10.26 |
바람이 센 날의 풍경 / 강인한 (0) | 2010.10.25 |
고원에 바람 불다 / 이승하 (0) | 2010.10.24 |
감 항아리 / 손택수 (0) | 2010.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