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 홍일표
배고픈 귀가 무럭무럭 커진다
너무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늘 제 속을 감추고 사는 밤
새파란 나뭇잎 같은 귀들이 팔락인다
하늘에서 떼어내 구석방에 넣어두었던 별들이 정충처럼 반짝이고
마음을 몇 번씩 갈아끼우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귀는 허기진 동굴이다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 밤의 가슴 속에서 야광봉을 꺼낸다
나는 저렇게 단단하고 오래 견딘 꽃봉오리를 본 적이 없다
작정한 듯 귀는 점점 부풀고
여자 안에 구겨져 있던 여자가 걸어나온다
최초로 마주친 눈앞의 어둠이 양수처럼 따듯하여 여자의 몸에 푸른
지느러미가 돋아나기도 한다
지상에 처음 온 비에 흠뻑 젖어
밤을 버리고 돌아온 밤
순하게 잠든 귓전에 양떼가 몰려와 여린 이파리를 뜯어 먹는다
간지러운 귀가 웃는다
『시와반시』 2010년 가을호
- 1958년 출생. 1988년 심상 신인상,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안개 그 사랑법><순환선><혼자 가는 길><살바도르 달리風의 낮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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