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육친 손택수

폴래폴래 2010. 9. 30. 22:56

 

 

 

 

 

  육친

 

                          - 손택수

 

 

 

 책장에 침을 묻히는 건 어머니의 오래된 버릇

 막 달인 간장 맛이라도 보듯

 눌러 찍은 손가락을 혀에 갖다 대고

 한참을 머물렀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곤 하지

 세상엔 체액을 활자 위에 묻히지 않곤 넘어갈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혀의 동의 없이는 도무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연필심에 침을 묻혀 글을 쓰던 버릇도 버릇이지만

 책 앞에서 침이 고이는 건

 종이 귀신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쓸쓸한 버릇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다고

 아내도 읽지 않는 내 시집 귀퉁이에

 어머니 침이 묻어 있네

 어린 날 오도독오도독 씹은 생선뼈와 함께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던 그 침

 페이지 페이지 얼룩이 되어 있네

 

 

 

 

 시집『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

 

 

 

 

 -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경남대 국어교육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

    신동엽창작상, 이수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김달진문학상젊은시인상 수상.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픈 천국 / 이영광  (0) 2010.10.05
달콤한 거래 / 이근화  (0) 2010.10.02
내게 다 들켰다 당신! / 이화영  (0) 2010.09.29
프라나* / 박미산  (0) 2010.09.29
잔 속의 바다 / 황정숙  (0) 2010.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