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우리들의 진화
- 이근화
감자와 고구마의 영양 성분은 놀랍다
나는 섭취한 대부분의 영양을 발로 소비한다
내 두 발을 사랑해
열 개의 손가락을 오래 사랑했다
고부라지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멈추지 않고 자라나는
내 몸의 물은 내 몸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우리는 길을 똑바로 걸어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우리는 길을 똑바로 걸어 되돌아왔다
사라지는 골목을 사랑해
오래 사랑했다
*
사람들의 팔과 다리를 잡아먹는
프레스기(機)의 진화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동그라미가 되어 간다
긴 손가락으로 긴 손가락을 잡으면
더 큰 동그라미들이 태어날까
더 많이 태어났다 오래 죽어갈 수 있을까
천장 위에 쌓이는 먼지들의 고고한 자세로
우리는 숨을 고르고 다시 손을 모은다
내 몸을 엉망으로 기억하는 이불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기로 한다
*
우리는 일어나서 웃었다 나는 점점 더 차가워지고
나는 점점 더 물렁해지며 아무 냄새도 피우지 않는다
외로운 자들이 자꾸 명랑해지는 이유를 하루 종일 생각했다
말이 없고 불만이 없는 자들이 사라질 미래를 향해 걸었다
저 나무를 들어 올리면 몇 채의 집이 쓰러질까
저 산을 뽑아낼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았다
직선으로 내리는 비는 본 적이 없다
동네를 두 바퀴 세 바퀴 돌고
우리는 안전하게 다시 웃었다
시집『우리들의 진화』문지 2009
시인의 뒷표지 글
새로 쓴 시가 먼저 쓴 시보다 더 ‘멋진’ 당신에게 배달되는 것은 아니다.
계단은 없다.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면.
아직 그 자리에. 지루하게 뭉개고 앉아서. 우리는 천국의 실험. 밝고
환한 혓바닥이 쓰윽 우리를 핥을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나도 좋은가.
-1976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고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4년『현대문학』등단
시집<칸트의 동물원><우리들의 진화>
윤동주상 젊은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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