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장미의 주먹 / 조정권

폴래폴래 2010. 6. 29. 11:54

 

 

 

 

 

 

  장미의 주먹

 

                          - 조정권  

 

 

 

 석계역에서, 시 쓰는 고려대 경희대 후배들과

 밤늦게 마시고 너무 늦어 차도 끊어져

 못 가거나 안 가는 이들과 함께

 포장마차에서 비바람 피하다가

 24시간 호프집에서 떠들다가

 나는 내 주먹이 너무 쉽게 시를 혹은 나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고

 주먹을 쥔다.

 너무 쉽게 이제까지 쥔 주먹을 풀어버리는 게 아닌가.

 5시. 비 그치고

 날 훤히 밝아오는 동네 길로 헤어져 돌아오면서

 나는 새벽까지 늦게까지 문 안 닫는 골목길 마트

 챙 넓은 파라솔 의자에서 잠시 나를 염한다.

 염한 채 앉는다.

 아파트 철책에는

 밤새 비바람이 할퀴고 간

 장미의 주먹이 한없이 피어 있었다.

 담벼락에도 장미의 주먹이 피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온 사방에

 비바람이 피워낸 장미의 주먹이 황홀하게 서로 깍 쥐며 피어 있었다.

 저 장미의 주먹을

 저 문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장미꽃들 그 주먹들이

 골을 싸맨 나를 후려 패는 게 아닌가.

 하루 종일

 술 속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나의 나날과 술과 장미의 주먹들이…… .

 

 

 

 

  『서정시학』2010년 여름호

 

 

 

 

  - 1970년『현대시학』등단.

    시집<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산정묘지>

    <신성한 숲><떠도는 몸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