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주먹
- 조정권
석계역에서, 시 쓰는 고려대 경희대 후배들과
밤늦게 마시고 너무 늦어 차도 끊어져
못 가거나 안 가는 이들과 함께
포장마차에서 비바람 피하다가
24시간 호프집에서 떠들다가
나는 내 주먹이 너무 쉽게 시를 혹은 나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고
주먹을 쥔다.
너무 쉽게 이제까지 쥔 주먹을 풀어버리는 게 아닌가.
5시. 비 그치고
날 훤히 밝아오는 동네 길로 헤어져 돌아오면서
나는 새벽까지 늦게까지 문 안 닫는 골목길 마트
챙 넓은 파라솔 의자에서 잠시 나를 염한다.
염한 채 앉는다.
아파트 철책에는
밤새 비바람이 할퀴고 간
장미의 주먹이 한없이 피어 있었다.
담벼락에도 장미의 주먹이 피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온 사방에
비바람이 피워낸 장미의 주먹이 황홀하게 서로 깍 쥐며 피어 있었다.
저 장미의 주먹을
저 문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장미꽃들 그 주먹들이
골을 싸맨 나를 후려 패는 게 아닌가.
하루 종일
술 속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나의 나날과 술과 장미의 주먹들이…… .
『서정시학』2010년 여름호
- 1970년『현대시학』등단.
시집<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산정묘지>
<신성한 숲><떠도는 몸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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