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간 자의 그림자 / 김충규

폴래폴래 2010. 5. 29. 23:04

 

 

 

   사진:네이버포토

 

 

 

 

  간 자의 그림자

 

                            - 김충규  

 

 

 

 

 가진 것 없으니 어둠이 근친이다 술이 핏줄이다 그렇게 살다간 큰형님은,

 오십 중반도 못 넘기고 저승 갔다

 간 자가 서럽나 간 자를 보내고 남은 자가 서럽나

 

 모르겠다;

 

 태양이 몰핀같이,

 낮 동안 통증을 잊고 지내라 다그치고

 나는 아우로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둠이 어둠과 섞여 더 질척해지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도 가진 것 없어 먼저 갈지도 모른다

 

 궁금하지 않다;

 

 다만, 누가 더 서럽나 간 자? 남은 자?

 

 숨결에 불순물이 섞여서 수시로 기침이 터져 나오는 밤,

 내 창밖에 서성거리는 저것이 간 자의 그림자라는 생각,

 그림자 홀로 간 자가 죽기 전 걸어 다녔던 길들을 서성거리고 있다는 생각,

 

 때론 눈알에 핏줄이 몰릴 때가 있는데

 너무나도 선명하게 간 자와 함께했던 어느 순간이 기억나는 때,

 서럽다고도 안 서럽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간 자를 내가 더 빨리 가라고 등 떠민 게 아닌데

 내 등이 후끈 차가워지는 순간이다

 누가 내 등을 떠미는 듯,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땡글땡글한 저승의 어둠 속으로,

 

 붉은 눈알로 창밖을 바라보면 거기 간 자가 남기고 간 그림자,

 아닌 듯 땅바닥에 드러눕는 것을 보기도 한다

 내 그림자를 내주고 그 그림자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왠지 내가 이승을 아무 미련 없이 견뎌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러다

 문득,

 혹시 내가

 간 자가 남기고 간 그림자가 아닌가,

 멍해지기도 하는데

 

 

 

 

  시집『아무 망설임 없이』문학의전당 2010

 

 

 

 

 

  - 경남 진주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 등단.

     시집<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물 위에 찍힌 발자국><아무 망설임 없이>

     수주문학상,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계간『시인시각』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