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간 자의 그림자
- 김충규
가진 것 없으니 어둠이 근친이다 술이 핏줄이다 그렇게 살다간 큰형님은,
오십 중반도 못 넘기고 저승 갔다
간 자가 서럽나 간 자를 보내고 남은 자가 서럽나
모르겠다;
태양이 몰핀같이,
낮 동안 통증을 잊고 지내라 다그치고
나는 아우로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둠이 어둠과 섞여 더 질척해지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도 가진 것 없어 먼저 갈지도 모른다
궁금하지 않다;
다만, 누가 더 서럽나 간 자? 남은 자?
숨결에 불순물이 섞여서 수시로 기침이 터져 나오는 밤,
내 창밖에 서성거리는 저것이 간 자의 그림자라는 생각,
그림자 홀로 간 자가 죽기 전 걸어 다녔던 길들을 서성거리고 있다는 생각,
때론 눈알에 핏줄이 몰릴 때가 있는데
너무나도 선명하게 간 자와 함께했던 어느 순간이 기억나는 때,
서럽다고도 안 서럽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간 자를 내가 더 빨리 가라고 등 떠민 게 아닌데
내 등이 후끈 차가워지는 순간이다
누가 내 등을 떠미는 듯,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땡글땡글한 저승의 어둠 속으로,
붉은 눈알로 창밖을 바라보면 거기 간 자가 남기고 간 그림자,
아닌 듯 땅바닥에 드러눕는 것을 보기도 한다
내 그림자를 내주고 그 그림자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왠지 내가 이승을 아무 미련 없이 견뎌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러다
문득,
혹시 내가
간 자가 남기고 간 그림자가 아닌가,
멍해지기도 하는데
시집『아무 망설임 없이』문학의전당 2010
- 경남 진주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 등단.
시집<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물 위에 찍힌 발자국><아무 망설임 없이>
수주문학상,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계간『시인시각』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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