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 누비옷
- 배종환
그곳에는 바람이 숲을 몰고 갔습니다. 황조롱이 나뭇가지에 앉아 허공을 깨뜨릴 때
나는 함부로 길 위에 올랐습니다. 길의 웅성거림이 떨고 있습니다. 먼저 간 추위와 뒤
따르는 총성에 산죽의 서걱서걱 요란한 발소리가 이곳이 감발에 감긴 당산인줄 진작
알았습니다.
고향에 당도하는 잠결에, 객사한 둘레길은 뱃가죽 붙은 허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픔
입니다. 풀뿌리에도 망태기 감싸안는 양민들, 마른버짐 핀 스님 바랑이 바삐 지나갔을
산길입니다. 불탄 절집을 버린, 가축과 곡식을 바치고 터전을 버린이들이 평지에 모여
장구채를 들었습니다. 소리패의 북채는 칼날을 세워 사당의 지붕너머로 입김을 한정없
이 뱉어 내었습니다.
그 많은 뼈무덤 남기고 간 그들은 시린 상고대로 살아 남았습니다. 가지에 맺힌 꽃바
람이 살 속을 아리게 합니다. 감각이 없는 손발에 떠 밀려 내려오는 길, 산비둘기가 꼭
가족 같습니다. 피할 이유를 모르는 저 들이 사랑한 길과 그 길을 사랑한 사람들이 걸어
간 길을 따라 갑니다. 나무들의 귀를 세운 뭉게구름이 뚝뚝 조각내어 가랑잎 굴러 갑니다.
켜켜이 쌓인 차가운 안개는 쉼없이 꿈을 지우고, 여기에는 적막한 가운데 가보지 못한
과거와 미래의 길, 눈물 가득 머금고 있는 지리산이 이렇게 고사목과 떨고 있습니다. 그들
이 낸 길에 와서야 허공을 바위로 굴리며 다시 걸어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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