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手話 / 황동규

폴래폴래 2010. 5. 10. 15:10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手話

 

                     - 황동규  

 

 

 

  1

 

  남들이 삭발했을 때, 삭발 그 때 이른 눈발, 너는 아래털을 밀렀어. 아내가 불현듯 웃고, 웃음 그 얼음 낀 벗음, 裸線의 전깃불로 어둡게 켜진 밤들, 너는 소리질렀어, 어둠 속으로 소리를, 열 개의 손가락으로.

 

  어둠 속에선 힘없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네 절반 웃고 나머지는 웃는 너를 바라보기다. 낄낄대는 소리. 네 전부 웃고 나머지는 웃지 않는 너를 바라보기다. 낄낄대는 소리. 자세히 들으면 침묵. 어둠 속에선 힘없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네 걸치고 다닌 신발 모두 모아 뒤집어 놓고 네가 病처럼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열 개의 손가락들. 어둠 속에선 힘없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2

 

  이건 집이고

  저건 나무다.

  이건 조그만 집이고

  저건 조그만 나무다.

  이건 네가 사는 조그만 집이고

 저건 네가 심은 조그만 나무다.

  이건 웃지 않는 네가 사는 조그만 집이고

  저건 자주 깨는 네가 살리려는 조그만 나무다.

  너는 밤마다 혼자서 중얼거린다.

  밖에선 무서리가 조용히 내리고

  같은 자리에서 밤개가 짖고 있다.

  가장 나은 패 벌려놓고

  가장 나은 패 펴놓은 표정으로

  너는 속이기 연습을 한다.

  이건 주위 살피지 않으려는 네 눈이고

  저건 전신이 매달리는 네 눈물이다.

  속이기, 아내가 아이를 八陣에 벌려놓고

  너를 감추기, 손이 떨어진다.

  이건 집이고

  저건 나무다.

 

  3

 

  오늘은 날이 맑았어. 신경 써져. 그놈은 돌아와 마누라를 세 번 조지고 다음날 오후엔 또 오입을 했어. 더 쉬운 말은 말기로 하자. 쉬운 말들, 사람, 사람다움, 자유, 대포로 쏘아도 들리지 않는 말들. 다 비었다 속삭이는 술병처럼 너는 두 손을 벌린다.

 

  술집 밖에는 공짜 달이 떠 있다. 너는 돌아서서 오줌을 눈다. 네 그림자도 비틀대며 오줌을 눈다. 어깨 힘을 빼고 천천히 너는 주먹을 휘두른다. 그림자는 한 발 물러서서 낄낄대며 네 목을 조이는 시늉을 한다.

 

 

 

 

  시집『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 졸업 영국에든버러 대학원.

     1958년『현대문학』에 <시월><즐거운 편지>추천 등단.

    시집<어떤 개인날><비가><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평균율2><악어를 조심하라고?><몰운대行><미시령 큰바람> 등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상, 연암문학상, 김종삼문학상, 이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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