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혜화역 4번 출구 / 이상국

폴래폴래 2010. 5. 6. 15:15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혜화역 4번 출구

 

                            -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 문학사상』 2010년 5월호

 

 

 

 

 

  -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심상』등단.

     시집<동해별곡><내일로 가는 소><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등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유심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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