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달 안을 걷다
- 김병호
내가 한 그루 은사시나무이었을 때
내 안에 머물던 눈 먼 새들
바늘 돋은 혀로 말간 울음을 날렸다
울음은 부풀어 둥근 달을 낳고
속잎새에만 골라 앉은 숫눈이
돌처럼 뜨거워져 발갛게 떠올랐다
잎 진 나무 모양으로 흐르던 푸른 수맥의 흔적
그 사이로 등지느러미 세운 물고기가
해질녘 주름진 빛과 몸 바꿔 흐를 때
내가 제일 나중에 지녔던 울음과
몸담아 흐른 기억마다에 피는 상여꽃
봄을 앓는 어머니가 누이의 머리채를 흔들고
꽃뱀이 누이의 다리를 휘감는다
한참 누이를 사랑하던 꽃뱀은
은사시나무로 다시 몸을 바꾸고
아버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으로 나가
허리를 꺾는다
어머니는 누이를 향해 자꾸만 손나비를 날리고
검은 살의 물고기들이 달려와 은사시잎을 뜯는다
아버지는 자정의 종소리로 울리고
달빛 속의 누이는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바람을 읽으면 별이 될 수 있을까
잎 큰 나무들이 바람을 모아
제 안에 나이테를 그려놓고
잎 떨군 나는,
눈 먼 새들의 울음을 모아 내 몸을 헹군다
시집『달 안을 걷다』천년의시작 2006
- 1971년 광주 출생. 중앙대 문창과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97년《월간문학》신인상, 2003년『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
저서<주제로 읽는 우리 근대시>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굿모닝 / 문인수 (0) | 2010.04.14 |
---|---|
옛날의 국수 가게 / 정진규 (0) | 2010.04.13 |
무덤들에서 듣다 / 서영처 (0) | 2010.04.12 |
거울 속 방은 절절 끓고 / 권현형 (0) | 2010.04.11 |
옛이야기 / 유현숙 (0) | 2010.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