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달 안을 걷다 / 김병호

폴래폴래 2010. 4. 13. 10:49

 

 

    사진:네이버포토

 

 

 

  달 안을 걷다

 

                              - 김병호

 

 

 

 내가 한 그루 은사시나무이었을 때

 내 안에 머물던 눈 먼 새들

 바늘 돋은 혀로 말간 울음을 날렸다

 울음은 부풀어 둥근 달을 낳고

 속잎새에만 골라 앉은 숫눈이

 돌처럼 뜨거워져 발갛게 떠올랐다

 잎 진 나무 모양으로 흐르던 푸른 수맥의 흔적

 그 사이로 등지느러미 세운 물고기가

 해질녘 주름진 빛과 몸 바꿔 흐를 때

 내가 제일 나중에 지녔던 울음과

 몸담아 흐른 기억마다에 피는 상여꽃

 봄을 앓는 어머니가 누이의 머리채를 흔들고

 꽃뱀이 누이의 다리를 휘감는다

 한참 누이를 사랑하던 꽃뱀은

 은사시나무로 다시 몸을 바꾸고

 아버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으로 나가

 허리를 꺾는다

 어머니는 누이를 향해 자꾸만 손나비를 날리고

 검은 살의 물고기들이 달려와 은사시잎을 뜯는다

 아버지는 자정의 종소리로 울리고

 달빛 속의 누이는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바람을 읽으면 별이 될 수 있을까

 잎 큰 나무들이 바람을 모아

 제 안에 나이테를 그려놓고

 잎 떨군 나는,

 눈 먼 새들의 울음을 모아 내 몸을 헹군다

 

 

 

 

  시집『달 안을 걷다』천년의시작 2006

 

 

 

 

 

  - 1971년 광주 출생. 중앙대 문창과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97년《월간문학》신인상, 2003년『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

     저서<주제로 읽는 우리 근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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