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팔만대장족경
- 유홍준
고향집 장독대에
이제는 다 채울 일 사라져버린 서 말가웃 장독 하나가 있다
흘러내린 바지춤을 스윽 끌어올리듯 무심코 난초 잎을 그려넣은
장독 앞에서 팔만개의 족적을 본다
반죽을 다지고 또 다졌을 팔만개의
발자국소리를 듣는다
누가 한 덩어리 흙 위에
저만한 발자국을 남겨
제 발자국을 똘똘 뭉쳐 독을 짓는단 말인가
천도가 넘는 가마 속에서
발갛게 달아올랐을
발자국이여
뒤꿈치여
단 한번이라도
저 독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면 나는
대시인이 됐을지도 몰라
간장이 익어 나오는 걸 봐
不正이라고 못 익히겠어 천벌이라고 못 익히겠어
콧물 훔치듯 난초 잎을 올려 친
팔만대장,족경이여
시집『나는, 웃는다』창비 2006
-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시와반시』신인상 등단.
시집<喪家에 모인 구두들>
시작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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