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젖지 않는 사람 / 이현승

폴래폴래 2010. 4. 2. 19:59

 

 

 

 

 

  젖지 않는 사람

 

                               - 이현승 

 

 

 

 죽은 사람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듯이

 나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귀를 기울인다

 

 의심은 물줄기를 따라 뿌리들의 어두운 층계에 머문다

 화분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귓속은 물을 채우기에는 너무 작은 용기이다

 

 죽어가는 나무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저녁은 제 물줄기를 부어 텅 빈 집을

 수족관처럼 빈틈없이 채운다

 

 이럴 때 가장 어두운 동굴은

 눈 속에 있는가 귓속에 있는가

 

 어떻게 돌고래들은 해안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하고

 어떻게 나무는 스스로 죽을 결심을 하는가

 어떤 범람이 나무에게서 호흡을 빼앗은 것인가

 

 

 

 

  『현대시』2010년 3월호

 

 

 

 

  -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고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1996년 전남일보, 2002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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