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지 않는 사람
- 이현승
죽은 사람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듯이
나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귀를 기울인다
의심은 물줄기를 따라 뿌리들의 어두운 층계에 머문다
화분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귓속은 물을 채우기에는 너무 작은 용기이다
죽어가는 나무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저녁은 제 물줄기를 부어 텅 빈 집을
수족관처럼 빈틈없이 채운다
이럴 때 가장 어두운 동굴은
눈 속에 있는가 귓속에 있는가
어떻게 돌고래들은 해안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하고
어떻게 나무는 스스로 죽을 결심을 하는가
어떤 범람이 나무에게서 호흡을 빼앗은 것인가
『현대시』2010년 3월호
-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고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1996년 전남일보, 2002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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