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숭어 / 박병수

폴래폴래 2010. 3. 19. 11:27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숭어

 

                  - 박병수 

 

 

 

  바람의 처진 혀는 늘 심해에 닿아 있지 소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며

 

  진심으로 바람, 그에 대하여 얘기하면 세상의 계단들이 즐거워진다 그의 발치에서

돌에 맞은 개의 비명이 사정없이 날아가고 비명의 끝을 잡고 계단들도 훨훨 어디론

가 떠나간다

 

  오늘 아침에는 당신이 숨겨 놓은 계단을 밟고 어린 진눈깨비가 다녀갔다

 

  정말 바람이라도 불었던 게야 한 개의 라면을 두 그릇에 담는 생각을 하며 돌멩이

를 던진 후 개의 슬픈 눈을 떠올릴 때 지하철에서 내린 우리는 역삼역 8번 출구를 오

르고 있다 한 세월, 천둥, 번개와 싸워 넝마가 된 늙은 여자의 때묻은 잠바와 손바닥

을 지탱하던 콘크리트바닥이 인파에 쓸려 조금 더 낮아진다

 

  우리는 바람과 산다는 착각을 하며 사실상 물속에 살고 있는지도 몰라 더 깊은 심

해로 떠날 수도 뭍으로 오를 수도 없는 방치된 어떤 풍문은 여덟 번째 계단에서 미동

조차 없다

 

  세 계단 아래에서 다른 어류를 바라보는, 이 순간은 범우주적 기적이야 당신과 나

는 지금 육지를 밟고 있어

 

 

 

 

  《시선》2010년 봄호

 

 

 

 

  - 2009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하반기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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