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
- 김이원
1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
그때 나는 이미 스스로 계획한 인생을 다 살아버렸고
그 나머지 인생을 살고 있었네
주먹만한 눈덩이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을 때
나는 자신의 안녕을 한없이 괴로워했었네
나의 안녕은 수치스러운 것
죽어간 인생들에게 어떠한 안부도 건네지 못했으므로
2
마음은 우연, 말도 우연
내 마음의 눈도 우연, 내 몸의 눈도 우연
그 겨울 눈꽃 천지의 세상도 우연
우연이 우연을 만날 때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욕망,
하지만 나
이미 마음의 눈(目)을 다쳐
보이지 않아
몸의 눈(目)마저 캄캄해
(길 잃은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죠
불길한 미래의 추억들은 어떠한 인생도
차용하질 못하거든요)
3
나, 떠나려 하네
이 곳의 마음을 지나
저 곳의 마음을 향해
세상의 여름이라 부르는 지금
바로 때 아니게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우연 속으로
수직의 햇살이 땅의 아픈 이마를 짚을지라도
내 다시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 하네
내 다시는 나의 이름을
스스로 기억하지 않으려 하네
- 『시문학』2009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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