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 / 김이원

폴래폴래 2010. 1. 28. 18:39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

 

                                                 - 김이원 

 

 

 

  1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

그때 나는 이미 스스로 계획한 인생을 다 살아버렸고

그 나머지 인생을 살고 있었네

 

주먹만한 눈덩이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을 때

나는 자신의 안녕을 한없이 괴로워했었네

 

나의 안녕은 수치스러운 것

죽어간 인생들에게 어떠한 안부도 건네지 못했으므로

 

  2

마음은 우연, 말도 우연

내 마음의 눈도 우연, 내 몸의 눈도 우연

그 겨울 눈꽃 천지의 세상도 우연

 

우연이 우연을 만날 때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욕망,

 

하지만 나

이미 마음의 눈(目)을 다쳐

보이지 않아

몸의 눈(目)마저 캄캄해

 

(길 잃은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죠

불길한 미래의 추억들은 어떠한 인생도

차용하질 못하거든요)

 

  3

나, 떠나려 하네

 

이 곳의 마음을 지나

저 곳의 마음을 향해

 

세상의 여름이라 부르는 지금

바로 때 아니게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우연 속으로

수직의 햇살이 땅의 아픈 이마를 짚을지라도

 

내 다시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 하네

 

내 다시는 나의 이름을

스스로 기억하지 않으려 하네

 

 

 

  - 『시문학』2009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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