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열쇠 / 김혜순

폴래폴래 2010. 1. 3. 22:06

 

 

 

 

 

 

  열쇠

 

               - 김혜순  

 

 

 

 역광 속에 멀어지는 당신 뒷모습 열쇠구멍이네

 그 구멍 속이 세상 밖이네

 

 어두운 산 능선은 열쇠의 굴곡처럼 구불거리고

 나는 그 긴 능선을 들어 당신을 열고 싶네

 

 저 먼 곳, 안타깝고 환한 광야가

 열쇠구멍 뒤에 매달려 있어서

 나는 그 광야에 한 아름 백합을 꽂았는데

 

 찰칵

 

 우리 몸은 모두 빛의 복도를 여는 문이라고

 죽은 사람들이 읽는 책에 씌어 있다는데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당신이 깜빡 사라지기 전 켜놓은 열쇠구멍 하나

 그믐에 구멍을 내어 밤보다 더한 어둠 켜놓은 깜깜한 나체 하나

 

 백합 향 가득한 광야가 그 구멍 속에서 멀어지네

 

 

 

       『문학과 사회』2009년 겨울호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8년 동아일보 평론, 1979년 문학과지성 시 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우리들의 음화><불쌍한 사랑기계> 등.

       김수영문학상,현대시작품상 수상.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