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강물의 심장 / 채호기

폴래폴래 2009. 12. 24. 11:56

 

 

 

 

 

 

     강물의 심장

 

                                  - 채호기 

 

 

 

 당신 편지를 읽는 것만으론 부족해

 편지지에서 글자를 딴다.

 투명한 물 아래 선명하게 보이는

 그것들에게 손을 뻗는다.

 물의 살에 손을 집어넣을 때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 일렁이는 물결,

 일그러지는 글자들

 아직도 가라앉아 있는 돌들

 투명한 당신의 가슴 안에

 손을 집어넣어 물고기처럼 퍼덕대는

 마음을 거머쥐듯

 강물에서 돌을 따낼 것이다.

 

 물은 손에 부딪혀 더 세차게 흐르고

 그 진동에 숲이 부르르 떤다.

 당신의 신음처럼

 새들은 어지럽게 공중을 휘젓고

 멀리 있어 보이지 않는 당신

 신경의 흥분과 육체의 떨림을

 이것에서 편지의 글자를 낚아챈

 손으로 생생하게 감지한다.

 

 

 

          시집『손가락이 뜨겁다』문지 2009

 

 

          - 1957년 대구 출생. 대전대 국문과 졸업.

            1988년『창작과비평』등단.

            시집<지독한 사랑><슬픈 게이><밤의 공중전화><수련>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수상.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