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수필방

차 한잔 / 정목일

폴래폴래 2009. 12. 5. 14:07

 

 

 

 

 

 

           차 한잔

 

                                      - 정목일  

 

  차 한잔 속엔 평범 속의 오묘함이 있다.

  그리운 이여, 매화가 피면, 국화가 피면 차 한잔을 나누고 싶다. 촛불을 켜놓고 마주 앉아 차 한잔을 나누는 것만으로 얼마나 좋은가.

  찻물은 심심산곡의 샘물을 받아와 쓴다. 첩첩산중의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맑은 물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산의 마음에 고여 있었다. 산의 만년 명상과 만 가지 풀, 나무들의 뿌리를 거쳐 맑고 깊어진 데다가 온갖 약초내음이 섞여 투명해졌다. 한잔의 물에 산의 마음이 가라앉아 담담해졌지만 심오하기 그지없어 사량(思量)하기조차 힘든다.

  좋은 차를 구하기 위해 봄에 하동 쌍계사에 가서 우전차(雨前茶)를 사왔다. 우전차는 곡우(穀雨) 전후 따온 녹차잎으로 만든다. 우전차엔 겨울의 긴 침묵을 견뎌낸 산의 입김이 서려 있다. 어둠과 죽음을 건너온 생명의 신비가 있다. 이 세상에 새움보다 더 보드랍고 눈부신 색깔은 없다. 탄생의 빛깔이요 신(神)이 낸 색채이기 때문이다.

  차그릇으론 막사발을 쓰고 싶다. 잘 만들겠다는 의식없이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마음도 없이 무의식 무형식으로, 무상 무념으로 빚어놓은 막사발이 좋을 듯하다. 차그릇은 산의 침묵, 하늘과 땅의 말들이 숨을 쉬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므로 텅 비어 있는 것이 좋다. 마음속까지 비워져야만 깊어질 대로 깊어져 산의 마음이 자리잡을 수 있다. 잔을 잡았을 때, 온화하고 그윽하여 저절로 마음에 가닿아야 한다. 찻잔도 한순간에 마음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만지는 동안 심오한 생각이 찻잔에 닿아, 어느새 정감과 사색의 이끼가 끼어야 오묘해진다.

  차를 잘 다려 내려면 정성이 깃들어야 한다. 아,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어디 가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복숭아꽃이 핀 것을 보고, 설산에 핀 풀꽃들을 바라보며 깨달은 이들이여. 무심코 추녀 끝에서 낙숫물이 떨어지자 섬돌 앞의 땅이 젖는 것을 보고서, 찻잎을 따면서, 깨달은 이들이여. 그 마음속에는 무심의 차 한잔이 놓여 있었던 것일까. 멀리서 영원하고 심오한 것을 보려다 눈이 먼 이들이여. 깨달음은 내 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마음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차를 우려낸 다음, 침향(沈香)을 꺼내 손으로 부벼 향긋한 냄새를 적셔 권해드리고 싶다. 침향은 향나무가 천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나온 것으로서, 세월이 지날수록 향기가 심원(深遠)해져간다. 차향에 침향의 천년 향기를 보태 맡으며, 차를 맛보고 싶다. 차 한잔에 잠긴 향기를 코 끝에 대보며 천년의 세월을 호흡해보고 싶다.

  차 한잔을 드는 것처럼 손쉽고 간단한 일도 없다. 하지만, 한량없이 신묘하여 막막해질 때가 있다.

  차 한잔을 드는 것은 산의 만년 명상과 마주 앉는 것, 영원의 하늘과 이마를 맞대어보는 일일 수도 있다. 어떻게 차 한잔을 잘 달여 마실 수 있을까. 만년 적막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염없이 몇만 광년의 별빛을 맞을 수 있을까.

  달빛 속에선 모두 닿아 있다. 찰나 속에 영원히 담기고 영원은 찰나 속에 숨을 쉰다. 별자리가 움직이고 계절이 바뀌고 물은 흐른다. 차 한잔을 마시며 영혼을 호흡해본다. 찰나 속에 영혼을 버리는 것이 영원을 얻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운 이여, 매화가 피거든, 난초꽃이 피거든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

 

 

 

         『마음꽃 피우기』청조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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