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달의 어두운 저편 / 남진우

폴래폴래 2009. 12. 4. 19:12

 

 

 

 

 

 

         달의 어두운 저편

 

                                           - 남진우  

 

 

 

 달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바람이 불면 모래 쓸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모래바람 속으로 걸어가 누워봐

 부우연 달빛 속 둥그렇게 떠오르는 모래무덤들이 보이지

 여기저기 흩어진 모래무덤에서

 희디힌 뼈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어

 죽어가는 자가 뿜어내는 빛이 지상에 가득 차

 세상을 더욱 적막하게 가라앉히고 있어

 사방에서 모래가 흘러내려

 발등을 덮고 가슴을 덮고 내 온몸을 덮고

 아, 나 또한 서서히 모래무덤이 되어가는 걸까

 밤새 발이 푹푹 빠지는 달 속을 헤매다 돌아오면

 옷깃에서도 구두에서도 모래알이 툭툭 떨어져내리지

 달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아무도 가보지 못한 달의 어두운 저편

 거기 내가 누울 자리가 기다리고 있어

 바람이 불면 내 몸에서 씻겨나온 모래알들이

 부우연 달빛 속에서 하염없이 흩날리지

 허공을 떠다니는 모래무덤에서 한방울

 눈물이 떨어져내려도

 이내 막막한 허공 어디선가 말라붙어버리지

 아무도 없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다만 차가운 어둠속에서 우리 모두 이렇게

 죽어가는 거야

 달의 어두운 저편

 

 

        시집『사랑의 어두운 저편』창비 2009

 

 

       [시인의 말]

 

  시인은 언어 속에서 조난당한 자이다. 사방으로 부서져 흩어지는 언어의

파편 속에서 표류하는 나를 본다. 그 어디에도 구원의 방주는 없다. 오직

언어만이, 나를 깊이 모를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사나운 물살이자 내가 한

사코 놓지 않으려 하는 뗏목의 잔해인 언어만이 내게 주어진 전부이다. 시

인이 백지를 두려워하는 것은 거기서 튀어나올 거센 해일을 예감하기 때문

이다. 어쩌면 나는 언어에 잠겨 익사할 것이다.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말해졌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은 아직 전혀 말해지지 않은 듯하다. 세상은 늘 새롭고 모든 것은 거듭

다시 말해져야 한다. 젊은 시절부터 써온 시편들을 묶는다. 시집의 형태로

시를 떠나보내는 것은 여전히 두렵고 설렌다.

 

                                                                                  2009년 11월

                                                                                           남진우

 

 

 

 

             -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김달진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명지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