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푸른 밤의 여로 / 김영남

폴래폴래 2009. 12. 3. 17:57

 

 

 

 

 

 

        푸른 밤의 여로

                 - 강진에서 마량까지

 

                                                - 김영남  

 

 

  둥글다는 건 슬픈거야. 슬퍼서 둥글어지기도 하지만 저 보름달을 한번 품어보아라. 품고서 가을 한가운데 서봐라.

 

  푸른 밤을 푸르게 가야 한다는 건 또 얼마나 슬픈 거고 내가 나를 아름답게 잠재워야 하는 모습이냐. 그동안 난 이런 밤의 옥수수 잎도, 옥수수 잎에 붙어 우는 한 마리의 풀벌레도 되지 못했구나. 여기에서 나는 어머니를 매단 저 둥근 사상과 함께 강진의 밤을 걷는다. 강진을 떠나 칠량을 거쳐 코스모스와 만조의 밤안개를 데리고 걷는다. ‘무진기행’은 칠량의 전망대에 맡겨두고 부질없는 내 시와 담뱃불만 데리고 걷는다. 걷다가 도요지 대구에서 추억의 손을 꺼내 보름달 같은 청자 항아릴 하나 빚어 누구의 뜨락에 놓고, 나는 박처럼 푸른 눈을 욕심껏 떠본다.

 

  구두가 미리 알고 걸음을 멈추는 곳,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

 

 

          시집『푸른 밤의 여로』

 

 

 

          - 1957년 전남 장흥 출생. 중앙대 경제과, 예술대학원 졸업.

             1988년『월간문학』신인상,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정동진역><모슬포 사랑><푸른 밤의 여로>

             윤동주문학상, 중앙문학상, 문학과창작 작품상, 현대시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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