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할여으에어 / 김기택

폴래폴래 2009. 11. 18. 08:50

 

 

 

        사진:네이버포토

 

 

 

        할여으에어

 

                                    - 김기택  

 

 

 

불이 살을 녹여 얼굴을 지우고

 손가락 발가락을 지우고

 콧구멍을 막았다

 병원이

 녹은 얼굴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

 호흡만 겨우 이어놓았다

 녹은 살 속에 숨어서

 벌겋게 벌거벗은 한 사람이

 두 손으로 ‘불’알을 꼭 가리고 웅크려

 신음하고 있었다

 (얼마나 깊고 어두울까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그 속은)

 익어버린 혀가 침묵하는 동안

 신음은 컴컴한 바람소리의 힘으로

 간신히 발음 하나를 만들었다

 할여으에어

 

 고기냄새가 난다

 불판 위에서 맹렬하게 들썩거리는 소리가 난다

 지독한 발음냄새가 난다

 살려주세요

 

 

 

          『애지』2009년 겨울호

 

 

               -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 영문과 졸업.

                  1989년「한국일보」신춘문예 <꼽추>가 당선.

                  시집<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

                 <소><껌>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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