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플라타너스 앞에서
- 김기택
덤프트럭 앞에서 짐자전거가 앞만 보며 달린다
갓길 없는 좁은 이차선 도로
아무리 빠르게 페달을 밟아도
느릿느릿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
사자 아가리 같은 경적이 쩌렁쩌렁 울며 뒷바퀴를 물어도
헛바퀴만 돌리며
아직도 커다란 플라타너스 앞을 지나가고 있는 저전거
자전거를 삼킬 듯 트럭은 꽁무니에 붙어서 오고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 줄에 달고 가듯 바퀴는 한적하고
발과 페달은 자전거 바퀴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시집『껌』창비 2009
시인의 말
이 시집의 시들은 결국 나와야 할 내 몫의 말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유전자지도에 그려진 내 얼굴 모양 · 본능 모양 · 성격 모양처럼 정확한 내 ‘꼴’ ,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그 꼴값이다. 의식적으로 변화하려 하기보다는 그 ‘꼴’ 이 불러주는 그대로 받아적으려고 했다.
스토커처럼 지긋지긋하게 나를 따라다니고 붙들던 모든 끈적거림과 비린내와 떨림을 다시는 내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시집 속에 꽉 눌려놓고, 또 백지 앞에 허공과 바람 앞에 선다.
2009년 2월
김기택
-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태아의 밤><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소>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이수문학상, 지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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