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물 桶 / 김종삼

폴래폴래 2009. 7. 29. 23:59

 

 

 

 

 

 

 

          물 桶

 

                                    - 김종삼 

 

 

 

 희미한

 風琴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아닌 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桶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廣野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신현림이 사랑하는 시)

 

 

   

  욕심 없는 맑은 심성이 가슴을 조용히 흔들어댄다. 실잠자리 한 마리 나와 방안을 날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환상으로, 때론 현기증으로 메마른 현실을 견디는 마음이 엷게 비친다. 수십번을 봐서 꾸겨질 만한데 이 시가 적힌 페이지는 구겨지지 않았다.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桶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는 구절을 볼 때마다 수도원에 머문 듯 가슴이 조촐하니 향기롭다. 도처에 쓸데없이 겉도는 말과 이미지가 들끓는 시대, 김종삼 시인이 몹시 그립다.

 

                                  시집: 당신이라는 시(신현림)마음산책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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