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초생달
- 이병초
문짝 뜯어진 틈새로 초생달 떴다
쌀겨 쌓아 둔 돼지막 창고
긁캥이가 달려드는지 슬근슬근 겨드랑이가 가렵다
씨서리도 안 허고 타잔 보러 갔다고 엄니한티 쫓겨난 밤
돼지 새끼들이 꿀꿀꿀 벽을 들이받는다
여섯 마리나 낳은 새끼들 중 다리 꼬부라진 놈을 골라
아버지는 잘도 잡수셨다 느덜뜰 저리 가거라
아뜰이 먹으면 주딩이에 꼬랑지 난다면서
막소금에 뭉텅뭉텅 살코기를 찍으셨다
나는 안다 다리 꼬부라진 돼지 새끼의
뜨다 만 눈, 초생달처럼 감다 만 눈
귀때기에 찍혀 익어버린 예방접종 날짜와
위아래 이빨에 팍 뚫린 돼지 새끼의 익은 혓바닥
송판때기에 깔리는 뜨다 만 그 초생달빛을
긁캥이가 뜯어먹은 겨드랑이를 피나게 긁었다
시집『살구꽃 피고』작가 2009
■ 自序
멧돼지 피가 뜨거운 산간벽지도 앞이 확 트인 들판도
아닌 곳. 똥간 옆 뒷거름이 집안의 오만잡것들을 받아먹
고 오지게 썩는 곳, 딸딸 걷어붙이고 논밭뙈기에 매달려
도 끼니때마다 쌀 떨어진 집이 더 많았던 곳. 혓바닥에 백
태 낀 말씨도 식도가 타들어가는 듯한 숨소리도 그저 건
성으로 몸에 두른 채 그 황방산 산자락에서 나는 오래토
록 헤매고 살았다. 가망 없는 세월을 견뎌낸 헛바람 내던
말씨, 밤마다 모로 돌아눕던 그 숨소리를 찾아서 나는 보
다 치열하게 뒷심 짱짱한 세월을 가꾸고 싶다.
어려운 때 시집을 흔쾌히 맡아준『작가』손정순 시인께
감사드린다.
2009년 2월
이병초
- 1963년 전주 출생. 우석대 국문과,
고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8년《시안》등단.
시집<밤비>
웅지세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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