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이상한 여름 / 강성은

폴래폴래 2009. 7. 24. 11:43

 

 

 

 

 

 

          이상한 여름

 

                                        - 강성은 

 

 

  이상한 여름이다 우리는 시체놀이를 하다가 땀을 흘린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 우리는 속으로만 말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눈앞의 검은 구멍은 점점 더 커진다 우리는 너무나 더워서 동굴 같은 저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도 갈 수 있는 법을 안다 포플러 커다란 잎들이 눈 감은 내 얼굴 위로 한 장 두 장 쌓인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창백한 매미들의 비명은 어디로 갔을까 이상하다 너와 나는 우리는 시체놀이를 하고 있는 것뿐인데 잎들이 쌓일수록 몸은 가라앉고 지상의 소리들은 멀어져간다 바람이 불자 우리는 공중으로 솟구친다 벌거벗은 채로 팔랑거리며 날아간다 이상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얇아져 한 장이 된 걸까 우리는 무얼까 날아가다 우리는 낱낱이 흩으져 가루가 된다 시체놀이는 그만하고 싶고 그러나 우리는 돌아오는 법을 모른다 아무리 눈을 떠도 시체들뿐이다 땀이 난다 우리의 비명만 공중을 가득 메운다

 

 

 

                   시집『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창비 2009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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