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정취암에서 하룻밤
- 공광규
저녁 산길 돌아 붉은 구름 높이에 올라와
객사 앞 소나무에 달을 걸어놓고 잤지요
새벽 도량석에 끌려 밖에 나가니
나도 객사도 법당도 별이불 덮고 자는 게 아니겠어요
대승암에 틀어 앉은 늙은 느티나무 위에선
가끔 철없이 깬 날짐승이 밤새 징징거리더군요
바람을 재우느라 수런거리는 대밭과 짐승 울음과
심란한 마음이 열사흘 달빛과 몽유하는 객사
그릇 부딪히는 공양간 소리에 깨어 마루에 나오니
안개가 폭설처럼 마을을 묻어버렸더군요
산신각 뒤꼍 죽은 소나무 우듬지에서
열심히 아침 공양을 드시는 딱따구리
내가 한 숟가락 뜰 때 열 숟가락도 더 뜨시는 딱따구리
꾀꼬리 노래 따라 응진전 지나 간월대 오르는데
이마를 툭 치는 개암나무 열매
고개 드니 어젯밤 쏟아진 유성이
바위 벼랑에 나리꽃으로 매달려 있는 게 아니겠어요?
시집『말똥 한 덩이』실천문학 2008
1960년 충남 청양 출생.동국대 국문과, 단국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1986년『동서문학』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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