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局外者2
- 여태천
종탑에서 빛이 흘러넘치는 때면
나는 이런 말을 곧잘 노트에 쓰곤 했었다
부끄러워하라
부끄러워하라
너무 하얘진 얼굴과
여지없이 들이닥치는 방문과 위로마저
종탑은 낡았고 빛은 희미했다
사람들은 가벼운 신발을 신고 이곳을 떠났다
달콤한 사과처럼 익어가는 시간은
그대에게로 가는 엽서에도 있어서,
나는 또 이런 말을 기어코 찾아 지우기도 했는데
수상한 말들의 씨
들키기라도 할까봐 내내 불안했다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마음의 역병과 저 펄럭거리는
희고 누런 빨래들이
넘치는 하수구와 집집마다 솟은 굴뚝이
그리고 내다버린 저 검은 비닐봉지들
수백 년 동안 이곳의 아이들이 그렇게 사라졌고
앞으로 부끄럼 없이 걸어갈 것이다
시집『국외자들』랜덤하우스 2006
- 1971년 경남 하동 출생. 고대 국문과 同대학원 박사
2000년『문학사상』등단.
동덕여대 국어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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