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그의 죽음을, 터치 / 이원

폴래폴래 2009. 6. 11. 08:35

 

 

 

 

 

 

 

 

          그의 죽음을, 터치

 

                                                             - 이원 

 

 

 

 한사람이 죽었습니다

 한 세계가 즉각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세계 앞에 오른손을 갖다 대고 검지 끝으로 살짝 누릅니다

 그는 아무도 없는 사막의 한낮을 걷고 있습니다

 뿌리가 없는 거베라 꽃 하나가 따라가며

 그의 얼굴을 가려줍니다

 보이지 않는 얼굴을 흰 거베라가 알고 있습니다

 사막에서도 그는 꽃그늘의 시간 아래로만 지나갑니다

 아직 그이 몸을 다 빠져나오지 못한 피가 몸으로 번집니다

 그는 거베라의 피어나는 순간이 됩니다

 붉고 검고 흰 거베라의 피를 검지 끝으로 누릅니다

 피가 폭죽처럼 터져 오릅니다

 

 피로 얼룩진 꽃잎인 그의 죽음을, 터치

 

 그가 걸어가는 방향을 누군가는 지평선이라고

 봄의 안쪽이라고

 누군가는 오므라들고 있는 입술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밤이 오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는 그는

 죽어서 발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는 죽음 안에 있으나

 그의 죽음은 내 손가락이 누르고 있어

 내 검지가 기억하는 죽음이 따라 나옵니다

 그러니 나는 봄의 길로도

 여름의 길로도 가을의 길로도

 길이 사라진 겨울의 허공으로도 땅 속으로도

 그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미지근한 손가락 안에서도

 내내 붙어있으면서도

 내내 제 안쪽이 말라가는

 모래들의 그 검은 고독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그의 죽음을, 터치, 터치

 

 

 

 

               『유심』2009년 5~6월호

 

 

 

 

              - 1968년 경기 화성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석사.

                 1992년<세계의문학>등단

                  현대시학 작품상, 현대시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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