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오동나무 / 최서림

폴래폴래 2009. 5. 28. 21:43

 

 

 

 

 

 

              오동나무     / 최서림 

 

 

 

 예로부터 저쪽 한량들이

 기타나 만돌린을 가지고 놀았듯이

 이쪽에서도 생활에 구멍 뻥뻥 뚫려있는 축들이

 거문고나 피리를 만지며 흥성거려 놀 줄 안다

 피리나 대금은 속을 통과해 나오는 바람으로 소리가 나는데

 그 속이란 게 그저 뻥 뚫려있는 듯해도

 천태만상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허(虛)란 실(實)의 다른 이름인 법

 거문고 마디마디 울혈진 가락이 하늘과 땅 사이를 진동시킬 수 있는 이치도 알고 보면

 뜯는 이의 마음이 텅 비어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텅텅 비어 있는 마음에서 저며 나와 푸르게 여울져 흘러가는 소리가 바로

 뜯는 이의 혼이자 거문고의 정신인 것

 잘 익은 가을날 오동나무를 베어 보라

 긴 줄기를 따라 虛의 정신으로 꽉 메워진

 텅 빈 구멍이 나있을 것이다

 잔뜩 움켜쥠보다 손을 탁 놓아 비워버림이

 자유롭다는 것을 진즉 알았는지

 오동은 씨앗 시절부터 그 안에 구멍을 키워 왔을 게다

 마음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놀 줄 아는 축들만이

 속이 텅 비어버려 쓸모 없는 오동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법

 구멍 없는 것들은

 놀 줄도 놀 자유도 모른다

 요새 사람들 노는 게 어디 노는 것인가

 

 

 

 

             -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 국문과 同 대학원 졸업

                1993년 '현대시' 등단.

                서울 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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