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풀 내음이 있는 커피 한 잔 / 조은길

폴래폴래 2009. 4. 27. 22:22

 

 

 

                                                          사진:네이버포토 

 

 

 

    풀 내음이 있는 커피 한 잔      / 조은길

 

 

 묵은 길은 위험하다며 아버지는

 앞장서서 낫으로 길을 내셨다

 

 묘소를 에워 싼 청솔 나무 안에서

 산솔새 무리들이 푸루루 ─자리를 옮겼다

 

 어느 난리 통에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정화수 떠놓고 기다렸다는 고조할머닌

 내내 그 숲에 혼자 누워 계셨다

 

 우리가 묘소의 풀을 베는 사이

 가을은 소리 나지 않는 걸음으로

 숲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끔해진 묘소 가에서

 담배를 꺼내시고

 나는 보온병에 넣어 간 커피를 꺼냈다

 갓 배어 낸 풀 내음이 프림처럼 커피 안에

 녹아 향기로웠다

 

 먼 하늘을 배경으로

 산솔새 무리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시를 음미하듯

 풀향 스민 커피를 머금고

 이른 새벽 정화수 떠놓고 두 손 모으던 사람과

 영원히 무덤을 가지지 않은 저

 돌아오는 것들과

 무덤을 가진 떠난 사람을 생각했다

 

 가까이서

 툭 ─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경남 마산 출생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노을이 흐르는 강>서정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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