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풀 내음이 있는 커피 한 잔 / 조은길
묵은 길은 위험하다며 아버지는
앞장서서 낫으로 길을 내셨다
묘소를 에워 싼 청솔 나무 안에서
산솔새 무리들이 푸루루 ─자리를 옮겼다
어느 난리 통에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정화수 떠놓고 기다렸다는 고조할머닌
내내 그 숲에 혼자 누워 계셨다
우리가 묘소의 풀을 베는 사이
가을은 소리 나지 않는 걸음으로
숲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끔해진 묘소 가에서
담배를 꺼내시고
나는 보온병에 넣어 간 커피를 꺼냈다
갓 배어 낸 풀 내음이 프림처럼 커피 안에
녹아 향기로웠다
먼 하늘을 배경으로
산솔새 무리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시를 음미하듯
풀향 스민 커피를 머금고
이른 새벽 정화수 떠놓고 두 손 모으던 사람과
영원히 무덤을 가지지 않은 저
돌아오는 것들과
무덤을 가진 떠난 사람을 생각했다
가까이서
툭 ─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경남 마산 출생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노을이 흐르는 강>서정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