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연애 / 류인서
우리 사이에 리본 매듭만한 짧은 길이 있었다
어느 날 이 길가에 흐린 외등이 깜빡 켜졌다
불면의 밤이 흠칫 놀라 서너 발짝 뒤로 물러났고
길은 몇 자쯤 더 길어진 골목길이 되었다
그로부터 당신과 나 아비규환의 날이 시작되었다
당신 발등에 꽃밭이 생기고 내 발목에 환히 복사꽃 피었다
내 정강이에 앵초꽃 피고 당신 허벅지의 물수국 잎을 터뜨렸다
그만큼 더 멀어진 길모퉁이에 전에 없던 빈집 한 채 보이고 전봇대가 껑충 몸을 일으켰다
당신과 나 아비규환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돌멩이가 발끝에 걸려 비명을 지르고 밤고양이 그늘에 숨어 담벼락을 할퀴었다
당신 등에 푸른 멍 그늘나비 내 옆구리에 생채기 해당화꽃
내 혓바닥엔 상한 구절초꽃이 당신 어깨엔 침묵의 검은 새가 날아와 앉았다
길은 이제 뒷걸음쳐 달아나는 지루한 길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이 길로 서로 다른 계절이 와서 다른 눈들을 피우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길 초입에다 누가 후사경을 세워두고 갔다
─사물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
- 경북 영천 출생. 2001년 '시와시학'신인상 등단.
시집<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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