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게들은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 최정례

폴래폴래 2008. 12. 10. 10:16

 

 

 

                                    사진출처:네이버포토

 

 

    게들은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최정례

 

   갯벌에 꼬물대던 작은 게들이

   갑자기

   천지개벽의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정지한다

 

   나는 아무런 의도가 없어, 없어

   너희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도

   찜 쪄 먹을 계획도 없다구

 

   그래도

   꼬물거리던 그들은 내 기척에

   기겁을 하고

   눈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뻘 저 편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척 게눈을 뜨고 내 눈치를 본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그들이 내 발길을 피해

   일제히 재빠르게 몸을 옮길 때

   순간의 무수한 게걸음에

   수평선이 빙그르 도는 것 같다

  

   아찔하다

   하늘은 뻘로 바다는 하늘로 뒤집힌다

 

   난 바람을 쐬러 방파제에 서있고

   옷자락을 펄럭일 뿐인데

 

   섭섭하다

   게들이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죽은 척 살아서 내 눈치를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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