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돌층계 / 장석남

폴래폴래 2008. 11. 30. 18:23

 

 

 

 

 

                  돌층계 

                                                장석남

 

   저무는 돌 층계를 위에서 바스듬히 내려다보면

   저 아래는 결코 흙마당이건만

   철썩이는 붉은 꽃바다가 있는 것만 같아요

   멀찍이 이만큼 서서 바라보니 다행이지

   무슨 멀미나는 운명들이 생겨나듯

   풀잎들 노을을 이고 마당가를 철썩여요

 

   막돌들을 업어다가 안아다가 놓고, 놓고, 놓고

   또 두어 뼘을 재서 큰 모판이라도 밀어가듯이 판판히

   놓고 하여서

   서너 층계를 만들었더니

   오르락내리락 종교와도 같은, 믿음과도 같은 리듬이

   생겨났습니다

   배고픈 김에 묵은 김치 한 보시기나 며느리 몰래 먹고

   물 마시고 나앉듯

   무끈히 힘 뺴며 올린 산들 하나는 꽃 한번 피고 지니

   그대로 그렇게 본토박이 할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마에 자꾸 주름 잡히어

   거울 보며 손가락으로 주름 펴면서도

   돌층계 아래로는 여전히

   꽃바다가 와서 수군대는 것 같아요

 

 

            * 1965년 경기 덕적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창작기금 수혜.